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5. 29. 선고 2024가단5350042 판결(확정)
(사례의 요지)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중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아래로 투신하여 사망하였는데, 보험사는 고의에 의한 자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였지만, 법원은 망인이 사망 당시 주요우울장애 상태였고, 그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상해사망보험금의 지급을 명한 사례.
[망인을 피보험자로 한 상해보험계약의 체결]
망인은 피고(보험사)와 사이에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성질상 상해보험에 속함)을 체결하였는데, 보장내용으로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입은 상해의 직접결과로써 사망한 경우’, 즉 상해사망의 경우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보험약관에는 면책사유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한편, 부책사유로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피보험자에게 우울증 발병, 그리고 투신 사고의 발생]
망인은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간 후 아래로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그런데, 망인은 우울증과 불면증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방법으로 자살시도를 한 전력도 있었다. 망인의 우울증 증상은 호전되었다가 다시 심해지기도 하였는데, 망인의 주치의는 망인의 병명을 ‘상세불명의 재발성 우울장애’로 최종진단하고, 자살위험 등 고려하여 보호자 24시간 관찰 필요함을 안내하고 입원을 권유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망인이 투신한 것이다.
[망인의 법정상속인들은 법률자문서와 의료자문서를 첨부하여 사망보험금 청구]
망인의 법정상속인들(원고)은 손해사정사를 선임하고, 변호사로부터 법률검토의견서를, 대학병원 의사로부터 의료자문 회신을 받아 보험사에게 상해사망을 이유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법률검토의견서에 의하면, 위 사고는 망인의 고의에 의한 자살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보험사는 망인의 사망에 대하여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의료자문 회신은 망인의 진단명은 주요우울장애가 적정하고, 망인이 주요우울장애에 의한 완고한 자살사고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소견이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법률자문서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 거절]
이에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책임이 있는지에 관하여 자문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요청하였는데, 자문 변호사는 의무기록에 나타난 우울증의 정도와 치료의 내용, 사고 당시 자살방법, 관련 판례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 불능상태에 관한 판단기준 등을 종합해 볼 때, 망인의 사망은 망인이 심신상실 등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따라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보험사는 망인이 우울증 진단으로 치료를 받은 것만으로는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취지의 ‘보험금 청구에 대한 회신’을 청구인에게 보냈다.
[사망보험금 청구소송 제기]
망인의 법정상속인들(원고)은 의료자문을 추가로 받은 후 보험사에 보험금을 지급해 줄 것을 재차 요청하였으나, 보험사는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 거절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어쩔 수 없이 보험사를 상대로 상해사망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사자 주장의 요지]
(1) 원고들 주장의 요지 :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이 주요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쳐 사망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급격하고도 우연한 사고로 신체에 입은 상해의 직접결과로써 사망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보험사)는 위 보험계약에서 정한 수익자인 원고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피고의 항변 요지 :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자살에 의한 것으로, 이 사건 각 보험약관에서 규정하는 보험금 면책사유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고, 망인이 이 사건 사고 당시 심신상실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특히 망인이 이 사건 사고 당시 거주지인 아파트 3층에서 9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스스로 투신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 사고 당시 망인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
(3) 원고들의 재반박 요지 : 망인이 3층에서 9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난간으로 투신한 것도 망인이 이미 주요우울장애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이후의 사정으로 볼 수 있는데, 망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 투신한 시점, 즉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3. 5. 18. 선고 2022다238800 판결 등 참조)임에 비추어, 피고가 주장한 사정만으로는 망인이 고의로 자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법원 판단]
망인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기간과 치료 내역, 우울증의 정도, 망인을 치료한 의사와 진료기록을 검토한 의사들의 진단이 주요 부분에서 일치하고, 위 의사들의 진단을 신빙할 수 없게 하는 다른 객관적 사정이 엿보이지 않는 점, 망인의 자살에 주요우울장애 이외 다른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을 종합하면 망인이 이 사건 사망사고 당시 주요우울장애 상태에 있었으며, 그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사건 사고에 이르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
비록 망인이 이 사건 사고 당시 거주지인 아파트 3층에서 9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스스로 투신하였는데,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사고 당시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인정을 뒤집기에 부족하다.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한다.
[간단 논평]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 보험사건에서는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주로 문제가 된다. 피보험자가 자신을 해치는 행위 유형으로는 투신이나 목맴, 음독, 부탄가스 흡입 등 다양한데, 이러한 행위 유형은 자살을 준비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어서 행위 자체로 일견 고의 자살을 의심할 만한 사유로 볼 여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경우라면 다르다. 우울증 중에서도 우울증의 정도가 중한 주요우울장애의 경우에는 자살 시도나 자살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그 병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매뉴얼 제5판(DSM-5)에 의하면,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사고 또는 자살시도나 자살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주요우울장애의 증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주요우울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이 위와 같이 자살을 시도하는 행위는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기 보다는 병리적 현상으로 보아야 하다.
법원은 종래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는 경우 대부분 고의에 의한 행위로 보고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주요우울장애 증상 자체가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자살 시도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점차 보험금 지급사유로 보게 되었는데, 이는 주요우울장애의 병증을 제대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경우는 피보험자의 우울증이 주요우울장애의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망인이 생전에 치료받던 병원의 진료기록 분석을 통해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대법원은 최근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하고 있어 의학적 견해가 중요해졌다. 결국 진료기록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이 사건의 경우, 피보험자가 자살을 감행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 점이 문제가 되었는데,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반박할 수 있었고, 법원이 이를 인정함으로써 이 사건 사고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 즉 상해사고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주요우울장애로 자신을 해친 경우는 그것이 병증의 발현인 것이지 고의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