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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안한 보험약관 무효"
기사입력 2007-09-17 17:12
2004년 대법판결이후 1심서 첫 승소사례…유사소송땐 보험사 수천억 추가부담 추산
불리한 약관 숨기는 영업관행은 사라질듯
보험가입자에 불리한 약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온 손해보험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에 이어 1심 법원서도 “보험사가 설명안 한 약관내용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최영룡 부장판사)는 지난 2004년6월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부인은 심각한 후유장해를 앓고 있는 최모씨가 부인 이모씨와 함께 H보험사를 상대로 “자기신체사고에 따른 사망보험금 및 후유장해보험금 1억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보험약관 무효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는 2004년 대법원 판결이후 1심에서 첫 승소한 사례다.
재판부는 “보험금 공제약관의 경우 중요한 계약사항이고, 보험사는 이를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며 “그러나 보험사는 원고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이상 공제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볼 수 없다”며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어 “H보험사측은 최씨와 이씨에게 사망보험금 및 후유장해보험금을 합쳐 총 1억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는 2004년 6월 사망ㆍ후유장해ㆍ부상시 보험가입액 각 5,000만원의 자기신체사고보험을 포함한 H보험사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후, 반대편 차선에서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충돌해 딸은 사망하고 부인 이씨는 우측 반신마비 등의 심각한 후유장해를 입는 피해를 당했다.
최씨는 가해차량측 S보험사로부터 딸 사망금으로 1억6,000만원, 부인 이씨 상해배상금으로 1억4,500만원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H보험사는 “가해 차량의 손해배상금이 최씨 등의 자기신체사고로 지급될 수 있는 금액보다 초과돼 공제약관에 따라 추가로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며 약정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최씨 등은 “약관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불리한 약관은 설명안하는 보험사 관행에 제동= 보험사가 설명을 제대로 안한 약관에 대해 법원이 “무효”라고 판단함에 따라 고객유치를 위해 가입자에 불리한 약관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온 보험사들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지난 2004년 대법원 판결이후 1심 법원이 판례를 적용한 첫 사례여서, 유사소송에서 가입자에 유리한 판결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된 ‘보험금 공제약관’은 보험계약 체결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가입자에 설명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반했다면 약관의 내용을 계약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번 소송을 이끈 보험전문인 박기억 변호사는 “보험사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약관을 가입자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며 “가입자에 유리한 유사판결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유사피해자 소송 잇따를 듯= 이번 판결로 유사피해자의 소송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특히 보험사들은 유사소송이 벌어질 경우 패소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따른 보험금 지급 부담 등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교통사고 보험금청구 시효는 2년이기 때문에, 잠재적 소송은 수백건이 넘을 전망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유사소송이 잇따르고, 보험사가 패소할 경우 전체 보험사들이 부담해야 할 추가 보험금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손해보험업체 한 관계자는 “유사소송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주요 약관내용에 대해서는 가입자에 반드시 설명하도록 내부적으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며 “그러나 시효가 지나지 않은 피해자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할 경우 부담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공제약관은 원천무효” 주장은 기각= 반면 법원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이었던 ‘보험금 공제’ 약관 자체가 무효라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서는 “공정을 잃은 조항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공제약관이 가입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거나 보험계약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자기신체사고보험의 성질상 보험사고 발생시 약정된 보험금이 전액 지급돼야 하는 정액보험인데다, 보험계약자들에게 불리하도록 약관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상법(보험편) 663조에도 위반되기 때문에 ‘보험금 공제약관’ 자체는 법리에 맞지 않아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보험사측은 “피해자가 가해차량의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은 배상금이 자기신체사고에 따른 실제 손해액을 초과했기 때문에, 보장대상이긴 하지만 공제약관상 추가적인 보험금 지급책임 의무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김홍길기자 what@sed.co.kr
김규남기자 kyu@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