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4. 8. 선고 2023가단5045152 판결
보험사 담당자가 소송을 제기한 법무법인 담당자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안내하였다면, 비록 소송이 소멸시효기간 도과 후 제기되었더라도 보험사가 채무를 승인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므로 보험사는 소멸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보험금 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본 사례.
[사안의 개요]
-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평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면서 가족들에게 죽고 싶다는 등의 얘기를 하곤하였는데, 어느 날 집에서 목을 매단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됨.
- 경찰의 내사결과 피보험자가 평소 우울증으로 신변을 비관하여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내사 종결
- 망인의 유족들이 망인이 가입한 보험사 3곳에 상해로 인한 사망을 이유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으나, 모두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면책을 통보함.
- 이에 망인의 유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보험사 중 1곳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함. 망인의 사망이 보험금 지급사유인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임.
- 그 후 망인의 유족들은 나머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이미 그 시점은 망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약간 넘은 시점이었던 것.
- 이에 관하여 원고 대리인과 피고 대리인 사이에 여러 공방이 이어졌는데,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음.
[보험사(피고)의 주장]
-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은 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 피고 보험사는 원고들에 대한 보험금지급채무를 승인한 사실이 없다. 피고 보험사 담당자가 원고들 대리인 담당자와 지급할 보험금에 관하여 협의하고 구체적인 보험금 원금과 지연손해금 내역을 팩스로 보낸 것은 보험사 실무자가 내부 결제를 거치지 않고 협의한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보험금지급채무를 승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원고의 재반박]
보험사가 먼저 능동적으로 외부에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에는 이미 내부 결제를 통하여 결정된 사항을 외부로 표시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의 경우 보험사 실무자가 먼저 원고들 대리인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은 보험사 실무자가 내부 결제를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법원 판단]
피고 보험사 담당자가 원고들 대리인 직원과 사이에 이율을 포함한 보험금의 액수에 대한 협의를 거친 사실, 보험사 직원이 팩스로 원고들 대리인 사무실에 보험금 액수를 산정하여 팩스를 보낸 사실, 보험사 담당자가 팩스로 보낸 보험금 액수로 합의가 된 것으로 송무파트에 통보하면 되느냐고 묻자 원고들 대리인 직원이 수긍한 사실이 각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보험사는 그 담당자를 통해 원고들에게 보험금채무가 있음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피고 보험사는 회사 실무자가 내부 결제를 거치지 않고 협의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나, 피고 보험사의 담당자의 언급에 비추어 볼 때 내부 의사결정 없이 담당자가 독단적으로 보험금지급 여부 자체를 결정하였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 보험사 담당직원이 팩스를 보낸 다음날 원고들 대리인 직원에게 보험금지급의무를 최종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사실을 알 수 있으나 이 역시 채무승인(보험금 액수가 아닌 보험금지급채무 자체의 승인) 이후의 번복으로 보일 따름이다.
결국 원고들의 피고 보험사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시점이 경과한 후 피고 보험사는 그 보험금채무의 존재를 승인함으로써 그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였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의 피고 보험사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은 그 시효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위 피고가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여 소멸하지 않았다는 원고들의 재항변은 이유가 있다.
[간단 논평]
원래 소멸시효제도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제도인데,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은 3년이어서 일반 채권자의 소멸시효 기간(10년)에 비하면 짧다. 그 만큼 보험금 청구권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여기서 채권자를 조금이라도 구제하기 위하여 채무 승인과 같은 소멸시효 중단이나 소멸시효의 포기와 같은 제도가 존재하는데, 회사와 같이 내부 결제를 거쳐야 하는 조직에서는 누가 채무 승인의 주체인지가 실무상 문제된다.
법리적으로 보면 회사의 의사결정권자의 의사표시가 필요하겠지만, 이는 회사 내부적인 문제라서 외부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회사 대표나 임원이 직접 고객과 소통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실무 담당자가 회사 내부의 결제를 받아 의사표시를 하였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회사가 능동적으로 외부에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와 수동적으로 외부로부터 의사표시를 수령하고 담당자가 즉시 어떤 답변을 하는 경우와는 다를 것 같다. 회사 담당자가 어떤 사항에 관하여 능동적인 입장에서 외부로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봄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이 사건에서는 보험사 담당 과장과 보험사로부터 보험업법 제185조에 따라 해당 사건을 위탁받아 업무를 처리한 위탁손해사정사가 직접 원고들의 소송을 수행하는 법무법인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여 보험금을 지급하겠으니 소송을 취하하고 관련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였다면 이 보험사가 보험금지급채무를 승인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보험사 담당자는 아무런 권한이 없으니 담당자의 의사표시만으로는 보험금지급채무 승인의 효력이 없다고 버티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끝.